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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떼와 벤츠의 차이 정도일뿐인 까닭 -- 차선의 존재.. 소시민이 타는 경차나 중산층의 아반떼, 소나타와 비교해서 벤츠나 마이바흐가 크다곤 해도 길이는 3배를, 폭은 2배를 채 초과하진 못한다. 그 까닭은 차선 폭의 존재이며, 교차로의 존재이며, (공공)도로를 달리기 때문이다.... 사도라 하여도 폭과 선의 규제는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집은? -- 택지소유상한제법 위헌 판결을 본다.
생명권에 대하여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의 지배영역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읽고 안락사와 낙태라는 참으로 궁극적인 상황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생명(生命)이란 한자어는 분리해보면 생(태어나다/키우다/살다)과 명(목숨, 명령)의 합체어이다. 그렇다면 생명권이라고 할 때, 생권과 명권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생(生)권은 살 권리, 살아갈 권리로 바로 이해되지만, 명(命)권은 그렇지 않다. 명줄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명령이라는 어휘는 현세의 개인 자신(자기결정의 영역)이 아닌 초월적 존재의 영속적 시간 속에서 명령 내지 의무를 연상케 한다. 우리말 표현에서도 (생)명을 다하다라고 하지 생명을 끝내다라고 하진 않는다. 명은 의지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반면 생(삶)은 삶..
사행성의 범위 사행성은 '도박'의 접점에서부터 '일'의 접점까지 아우르는 집단에서 非도박이자 非일인 놀이(게임)를 뺀 나머지 놀이를 가리키는 말처럼 되었다. 따라서 非도박이자 非일인 놀이를 주창하는 자는 때로는 도박의 뜻으로 사행성을, 때로는 일의 뜻으로 사행성을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통상 후자는 전자로 오인되기 쉽다. 가운데의 반대는 양끝이지 왼쪽 끝만이 아님에도.. (사실 혼동을 피하려면 양끝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사행성'이 아닌 '비게임성'만을 사용하고,왼쪽은 종전대로 사행성, 오른쪽은 playbour(play+labour)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씀이 좋겠다)
인터넷 혁신, 실재를 가상에 세우다. “Ce n'est pas parce que c'est inventéque ça n'existe pas” “지어낸 것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위 문구는 최근 국내에도 상영된 프랑스 애니메이션 ‘엘레노의 비밀’의 주인공(난독증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어린 소년)이 읽어내야 할 주문 내용이다. 암호해독과 같은 거창한 작업은 아니지만, 당사자인 주인공에게는 참으로 용기를 내어야만 가능한 일로서 그려진다. 우리 집 막내 또한 동화책을 읽어주기만을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 읽기를 꺼려하여 부모로서 조금 염려하는 바가 있어서인지 공감이 가는 설정이었다. 주인공이 주문을 왜 읊어야 하는가가 애니메이션의 주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요는 동화 ..
[CCL] Configuring the Networked Self - BY JULIE E. COHEN juliecohen.com 에서 CCL에 따라 책 전문을 읽을 수 있고, http://picker.typepad.com/picker_seminar/2012/02/index.html 에서 다른 초기 독자들(early readers)의 감상을 볼 수 있다. - 현재까지 18편의 포스팅 이 책에 접근하는데 있어 높은 가격과 난해한 문체가 진입장벽이라 보이는데, 전자는 CCL을 통해, 후자는 위 블로그와 같은 독자-저자와의 대화 및 집단지성에 의해 열려지기 시작했다. 누스바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플레이와 같은 단어가 주는 매력때문에 수 년전부터 출간을 기다려왔다. see also http://virtuallaw.tistory.com/301 , John Palfrey's post 아밀라아제는 충분히 흘려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