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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생명권에 대하여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의 지배영역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읽고


안락사와 낙태라는 참으로 궁극적인 상황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생명(生命)이란 한자어는 분리해보면 생(태어나다/키우다/살다)과 명(목숨, 명령)의 합체어이다.


그렇다면 생명권이라고 할 때, 생권과 명권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생(生)권은 살 권리, 살아갈 권리로 바로 이해되지만,


명()권은 그렇지 않다. 명줄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명령이라는 어휘는 현세의 개인 자신(자기결정의 영역)이 아닌


초월적 존재의 영속적 시간 속에서 명령 내지 의무를 연상케 한다.



우리말 표현에서도


(생)명을 다하다라고 하지 생명을 끝내다라고 하진 않는다. 명은 의지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반면 생(삶)은 삶을 끝내다라는 표현이 가능하고 쓰이고 있다. 삶은 의지(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말이라고 생각되온 '생명' 속에는 마치 음양처럼 다른 두가지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에서 자연법적 기초로 인정되는 생명'권'이라 할 때,


실상 생과 명 중 '명'은 권리라기보다는 숙명처럼 의무에 더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즉, 근로권과 교육권에 근로의 의무나 교육의 의무가 결부되듯이.



그런데 드는 의문은

근로나 교육은 인간들의 사회적 합의물임에 반하여

'생'과 달리 '명'이라는 것은 그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조상, 신, 삼신할머니, 아니면 '자연'법 등인데,

그 공통점은 '종교/도덕' 내지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생권이 아닌 생명권 특히 '명' 부분을 보장한다는 것은 

종교/도덕를 보장하고 지킨다는 것인데, 


여기서 종교/도덕률로서의 '명'은 개체의 선택에 의한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미리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태적인 것이 된다.


어쩌면 안락사의 절대적 금지와 처벌은 생명권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 중 '생(자기결정)'를 배제하고 '명'만을 고수케 함으로써 국가가 믿음/종교를 그 개인에게 강요하고 태아와 환자를 객체화하는(혼인빙자간음죄의 여성과 같이) 것일 수 있고,


낙태의 절대적 금지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생'이 아직 발화되지 않은 시기에 '명'만을 절대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산모의 '생(자기결정)'에 국가가 믿음/종교를 강제 부착하는 것일 수 있다.


정혼제도 하에서 배우자의 선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모나 제3자의 '명'을 그저 따르는 것이었다면,

착상된 태아를 절대적으로 낳아야 한다는 것 엯시 종교나 믿음의 '명'을 따르는 것이고 거기에는 생(삶)은 없고, 의무만이 평등하게 남는다.

 

태아 속 명은 보호대상 내지 의무로서는 완성/전제되어 있지만 생(자기결정)의 주체로서는 그 생성과정에 있을 따름이다. 명은 태아를 주어로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태아의 생권 대 산모의 생권 간의 충돌은 규범조화의 영역임에 반하여, 태아의 명 의무 대 산모의 생권간은 형량의 영역이라 할 것이다)

 

헌법상 생명권은 

헌법상 종교와 국가의 분리 원칙, 법은 도덕의 최소한 원칙이며 특히 형벌은 법중에서도 보충적인 것이라는 원칙

과 조화되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헌법상 '생명'권이라고 불리우는 것 속의 '명'에 대하여 위와 같이 생각을 달리하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