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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1년 반치 트윗보 : 법과 정의편


"민주주의는 법의 퇴락이며, 법의 폭력이나 권위 또는 권력의 퇴락이다." 자끄 데리다 저 법의 힘 제2장 벤야민의 이름 중에서


아바타 보기 전 '바야돌리드논쟁'을 읽고있다. '침입과정복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흔히 상인을 첫째자리에, 그다음 선교사와 군대를 놓는다. 유감스럽게도 법률가들은 잊히기가 십상이다. 갈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대륙에서도 모든 약탈은 법에 따라 이뤄졌다.'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계산의 요소이며,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만, 정의는 계산불가능한 것이며, 정의는 우리가 계산불가능한 것과 함께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 -- 자끄 데리다의 '법의정신' 1편 법에서 정의로 중에서


폭력은 법의 내부로부터 법을 위협한다. 최대치의 힘을 지닌 법이 두려워하는 것은 범죄나 강도집단이 아니다. 정초적인 폭력, 즉 자신이 법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폭력을 두려워한다. -- 데리다의 '법의 정신' 2편 벤야민의 이름 중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은 좋은법도 법이라고 말했을 뿐. 그는 법을 따르고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택하고 법을 너머섰다.


'법정은 일상 세계와는 울타리 쳐져 격리된 장소이다. 원형이든 사각형이든 그것은 여전히 마법의 원이고, 계급적 차별의 관습이 일시적으로 폐지되는 놀이터이다. 거기서 인간은 당분간 아무런 해도 받지 않는다' - 호모 루덴스


'나리, 그리고 여러분, 만일 인간들의 부당함이 우유에 든 파리를 알아보는 것처럼 명확한 판결로 쉽게 보일 수 있다면, 지금처럼 세상에서 네 마리 황소들이 그토록 쥐들에게 많이 물어뜯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팡타그뤼엘 12장 윔므벤 영주의 법정변론


"폴리스는 시민들이 모여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 흔히들 이런 그리스의 폴리스 정치체제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있으나 그렇지 않다. 핵심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것이다." http://j.mp/9To4oe


"특히 사회신분 관련 .. 시정을 요하는 부분이 있다. 폴리스의 구성원이 시민과 노예로 나뉘고 시민은 노예 노동력에 의존해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 또 남성은 시민권이 있고 여성은 시민권이 없는것으로 이해되온 점이다." http://j.mp/9To4oe


"고대 아테네 계약법의 특색은 매매가 대개 - 언제라도 일정 금액을 반환하면 되찾을 수 있는- 환매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신체의 매매에도 적용됬다. 그래서 사고 팔 수 있는 예속노동자는 신분이 아닌 경제적 관계다" -조그라포스 아리스토텔레스


'살인이 일어나도 개인의 기소 없으면 재판이 없고, 체포과정에서도 국가가 능동적으로 색출하기 보다는, 피해자가 직접 혐의자를 잡거나 관리를 혐의자가 있는 곳으로 대동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범죄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공소의 개념은 없다.' -조그라포스


선거(법)라는 기술 역시 ANT에서 말하는 black box가 아닐까? 커튼 열고 들어가 도장 찍는 그 단순함 속에 모든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으니.


국가는 NamelessOne이 호명하여 소환되었고 그는 주권자이다. 그런 pet인 국가가 주인에게 name을 밝히라 할 당위성은 어디 있는가? Namelessless one은 One 아닌 one일뿐이고, one에게 국가는 pet 아닌 leviathan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지만 소유권 역시 진공을 혐오하는 것 같다. 자연의 자연인 우주가 진공이라는 점이 위안이 안되는 인간의 자연에 둘러싸인 분노의 아침에.


갗이나 옷에서 일정 거리 내에 있으면서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 -- 재산권의 대상은 아니지만 인격권의 대상. 근대인은 벌거벗겨진 대신 각자가 이 투명한 법의를 지급받은 셈.


진짜사실인 진실은 당사자가 알고 있다. 재판은 각 당사자가 낸 퍼즐조각으로 가상의 사실을 맞추는 것. 진실이 코끼리일 때, 조각이 뱀모양이면 뱀, 기둥모양이면 기둥이라 선고된다. 두려워하는 것은 퍼즐조각이 코끼리 삼킨 보아뱀일 때 모자라 보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은 신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데서 유래됬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악을 약자에게서 찾는다면, 사회정의도 그러할 것이다. 강자의 정의는 저울을 못쓰게 한다.


한시장애에 대비되는 영구장애란 용어가 있다. 죽음이 예정된 인간 육신에 영구적 장애가 가능할까? 뼈도 살도 사라지는데? 여생장애/평생장애의 오버이리라. 이모탈 소유권엔 몰라도 모탈 '저작권에 대해 영구적 침해'란 표현을 씀도 마찬가지다.


눈이 고루 뿌려지는데 그치면 은색 리무진과 노란 경차를 똑같은 흰색으로 덮을 수는 있어도 그 크기의 차는 그대로 남는다. 경차 위에 더 많은 눈을 쌓는 눈구름이 펄펄 정의롭다.


"고아는 부자에게 바쳐지지 아니하고, 과부는 강자에게 바쳐지지 아니하며, 1의 재산을 가진이는 그 60배 재산을 가진이에게 바쳐지지 아니한다." 인류사 최고법(最古法)인 우르-남무 법(Code of Ur-Nammu) 서문 中


무엇이 正義인가 定意하긴 어려운 문제지만, 그럼에도불구 정의는 정의내려야 그 氣를 드러낸다. 허나 때로는 정의내리지 않는 것이 정의의 理를 지키는것인 경우가 있다. 답은 미리 없다. '共益'의 정의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 위헌소원 결정문의 의견대립같이.


전기통신기본법 위헌소원의 다수의견은 국가와 사회를 나누고 현재의 사회는 다원적이고 가치상대적인 구조로 되있다고 보아 그런 사회에서 共益의 객관적 의미확정은 불가라했고, 반면 소수의견은 共益을 國益에 가까운 것으로 정의 가능하다했다. 국가사회일원론..


만약에 전기통신기본법의 조문이 共益이 아니라 國益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법률정보 검색하면 '국익'이란 키워드로 나오는 법령이 십여건 된다.


금번 전기통신기본법 위헌소원에서 다수의견은 공익의 의미에 대한 객관적 확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와 사회간 관계에 관한 객관적 의미 확정을 한 것과 같다고 이해한다. A를 정의내리지 않음으로써 B를 정의내리는 것 또한 정의의 공식.


전기통신기본법 위헌소원에서 소수의견은 공익을 국민 전체나 대다수의 이익, 국가사회이익이라고 객관적 정의를 내림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관한 정의도 같이 내렸다. A를 정의내려 B를 정의내리는 것 역시 정의의 공식. 공식은 있어도 답은 미리 없다.


law의 어원은 lay, layer를 뜻하는 lagu라 한다. 문명은 빙하가 아닌 황하에서 비롯되었고, 그렇다면 법이란 고요한 얼음에 밀려 쓸려진 각진 돌맹이(moraine)가 아니라 요동치는 강물에 찔려 섞여진 연한 충적토(alluvia)같은 것.


법이 충적토 즉 점토와 같다는 건, 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즉 법은 바위나 자갈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구석기인들처럼 그대로 또는 조각내 섬길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빚어 그릇, 집, 수로가 된 인공물인 플라스틱이다.


평화는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 부는 만큼 일어나고, 태운 만큼 스러지는 것. 미리 생각하는 사람(Prometheus)이 간을 걸고 훔쳐 온 것 같은 것.


헌법상 권리이자 의무인 교육, 노동, 환경은 동시에 헌법상 의무이자 권리인 것. 이 셋이 자연(自然)의 자궁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당연(當然)의 친자임은 분명하다.


살처분과 Bot처분의 주체에게 던져진 정의론. Martha Nussbaum, <Beyond the Social Contract: Toward Global Justice> http://goo.gl/SmrPs


어떤 행위에 대하여 타임머신 타고 앞 뒤로 2000년 돌려 지구 상에 랜덤하게 착륙해도 거기서 나쁘다 소리 들으면 자연법 위반, 그렇지 않다면 그건 실정법 위반.


17세기 중엽 프랑스서 발명된 police는 그리스 polis에서 연유. 그럼 police 없던 polis서 살인 강도범 잡는 이는? 바로 polis인 자신! => police의 상대어는 범죄자라기 보다는 국가공동체의 상대어인 polis 그 자체.


고대 polis인은 때로 공직과 군인을 맡다가 일생기면 범인도 잡아 기소하고, 증인/재판관도 되며, 종종 민회에 나가 정치를 했다. 일견 경찰,정치인,법조인이 분화되기전 원시모습같으나 일면 현대보다 더 고도로 분화된 것인지도 => 생산의 노예일임

  
직접 생산에 종사하지 않은 점은 같았음에도 폴리스인은 서로마인과 달리 군역/ 경찰역/정치역을 손수 플레이했지 남에게 맡긴뒤 관람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고라와 콜로세움의 차이고, 전쟁으로 망함과 반란으로 망함의 차이며, 게임과 영화의 유희 차이다.


생산과 관람을 멈추고 달리는 거리의 이집트인은 지금 플레이어다.


시민, 경찰과 군대. 시민혁명시 군인들 마음향방 중요. 경찰은 일부시민만의 직업vs. 모병제 하 군인(이집트군)은 일반시민의 역무. 즉 경찰보다 군인이 참 시민인 폴리스에 가깝다. 독일모병제전환 반대논거엔 그런 감수성 절연 우려도 있었다고.


"수메르인이 믿은 정의의 신은 태양신 우투. 우투는 길 떠나는 이를 보호한다." -> 어딘가로 떠난다는건 뭔가 결여된 게 있다는것. 보호라 함은 결과는 몰라도 과정만큼은 지켜준다는 것. 자길 떠난 지구를 향해 같은 빛을 보내주는 태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