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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달팽이와 밀웜



트위터에서 블로그로 돌아와 보니, 조용한 화면에 커다란 여백이 마치 대양처럼 고요히 떠있다. 


날고 있기 위해 트위터에선 수시로 퍼덕거려야 했지만 여긴 그럴 필요가 없다. 고요함에 푹 잠겨 천천히 대류에 흘러갈테니..하지만 공중의 재잘거림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하고, 약간은 우울한 느낌도 든다.


우기라고 불릴 정도의 오랜 비내림 때문인지
최근 두 주 간

아파트 현관에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진 길에 드물지 않게 
갈색 바탕에 거무죽죽한 껍질의 달팽이가 있는 걸 목도한다. 

혹여라도 밟으면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날 것이라.

내 맘 속에
측은지심, 아니 이기심(구두가 더러워지거나,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어느 게
자리잡은 건지 가늠키 어렵지만


아무튼 출근길에 달팽이를 발견한 뒤로는
자이나 교도는 아니어도 (불살생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빗자루를 소지하며, 발 앞을 매번 쓸어가며 걷는다고 하는) 안경렌즈를 투과하는 시선으로 길 위의 좌우를 쓸어가며 걷게 되었다.

그래서 그 동안 네 다섯번 달팽이와 조우를 하고, 찾았다는 만족감을 가진 채 녀석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때로 거기 계속 있으면 위험한데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들어 옮겨주진 않았다. 약간 갈등이 있긴 했지만..

속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니 속살과 구분하기 어려운 그 껍질은
어찌 이리 가엽게도 연약하고 쓸모없는 것인가. 
 
늘상 그러하듯, 평균인이 그러하듯, 보통의 걸음과 보통의 시선에 의해서 간단히 파쇄될 수 있다는 건.


.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만나는 첫 인사는 두 아들과, 그리고 내가 건네는 세번째 인사는
키운지 한달 된  작은 양서류 한 마리에게.

길이는 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머리는 해바라기 씨앗만한 녀석은
주로 살아 있는 것만 먹는다고 하여 근처 연못에 가서 장구벌레, 미니 소금쟁이를 찾아대거나, 우연히 실내로 들어오거나 음식쓰레기서 생긴 날벌래를 잡느라 산채로 퇴근 후 밤시간 일부와 주말 오전을 내었다.

그런데 장마로 집의 안과 밖 사이에 빗물로 이뤄진 비닐랩이 씌워진양 되버려
안의 사람이 나가거나, 밖의 벌레가 들어오기 피차 어렵게 됬다. 

그래 굶어 죽지 않을까. 염려스런 마음에, 잘 먹진 않는 것 같지만
아내가 질겁하여 눈에 안 띄는 낮은 서랍 속에 안치된
냉동 건조 밀웜 한팩을 다시 꺼냈다.

 
수십 개 중 작은 걸 골라 한 개만 손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소꿉장난용 양철그릇에 담아 매직펜 끝으로 꾹꾹
그래서 그 파편을, 가루 감기약 1회분의 반의 반도 안되는 양을

그 놈이 조각상처럼 올라서 있는 조약돌 위에 뿌려 놓았다.

다음날 아침, 역시 놈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물에 떨어진 파편 일부를 물이 오염될까 건져 옆의 화분에 버렸다)


그 다음날인가,  
사육통 안을 맹하게 쳐다보다. 눈이 당겨졌다.


움직임이다.
아주 작은 밀웜 유충 십여 마리가 돌 틈에서 꼬물대고 어떤 놈은 암벽을 기어간다.
 

곁의 양서류는 그걸 정지한 채 바라보는데, 나도 같은 자세로 얼어붙었다.

뭔가 경외심에 근접하는 이 느낌. 
죽어, 육즙 한방울 남지 않게 마르고, 냉동고 속을 통과해, 내 손에 산산이 가루가 된 그런 모체 속에서.

하여

달팽이 껍질을 보호해준다는(우습게 보면서) 알량한 자비심이란 방패는 
밀웜 유충을 지켜낸 그 껍질의 뾰죡함에 단단히 뚫려버린 것만 같았다. 



..




(그런데 양서류는 살아있는 것을 그나마 좋아한다는 말은 맞는 말같다.
밤을 지날 수록 하나 둘, 바위 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유충들이 있다.
그 때 그 놈이 나처럼 꼼짝없이 정지자세로 바라 본 건  같은 마음이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