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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헌집

옥션은 가해자인가? 피해의 양이 아닌 보안의 질이 관건

중국 해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침입으로 인하여 옥션 내의 개인정보 1천만건이 침탈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의 경우는 화를 면했지만, 아내의 경우는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이 침탈되었습니다.
(침해여부 확인 공지란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는데요. 팝업창으로 뜰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언론을 보니 언론에 본격적으로 보도된지 2-3일만에 10만명 가까이 대 옥션 상대의 손해배상소송 카페 회원 모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엄청난 수의 개인정보가 침탈당했다는 점은 확인된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법적인 책임을 옥션이 져야 하는 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 보입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분명한 것은 현재로서는 해커입니다.

옥션도 자사 회원들에 대한 가해자로서 위치할지, 아니면 옥션 역시 불운한 피해자에 위치할지는 미래의 소송 결과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민법은 결과책임/무과실책임주의가 아닌 행위책임/과실책임주의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해의 결과가 중하다 하여 법상 주의의무를 다한 자를 특히 그가 자력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500명을 태운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하여 납치당하여 다수가 사망하고 다치고 공포에 떨었다고 할 경우, 적법한 보안검색을 마치고, 정상적인 항로와 항법을 준수하고 비상시 안전관련 법령도 기장과 승무원들이 모두 준수한 경우, 비행사에게 피해가족들이 그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옥션이 가해자인가 여부는,


해킹을 당하기 전의 사이트와 정보들에 대한 보호수준-개인정보보호법 준수여부, 개인정보 담당자들의 운영실태, 해커들의 기술적 수준이 방어가능한 수준의 통상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현재의 방어수준으로는 막기 곤란한 최첨단 기법이었는지, 해킹과 그로인한 정보 유출과정에 있어 옥션측의 막을 수 있었던 실수나 회피할 수 있었던 잘못이 결부되었는지,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탈취 이후 옥션이 피해확대를 막기 위한 적절한 노력을 다하였는지


등과 같은 요소들이 밝혀진 이후에 가려질 것이라 봅니다.

현재 언론보도가 해커의 침입과정과 그에 대한 옥션측의 보안측면의 대응 등과 같은 원인의 측면에 대한 정보제시는 거의 없이, 1000만명이라는 피해측면의 부각에 치우쳐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온라인게임사, 은행에 대한 유사 소송에서도 온라인게임사, 은행 자신의 보안 노력 혹은 실책 여부가 원고 일부 승소, 원고 패소를 가르는 주된 기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법의 판단에 있어서는,

눈에 보이는 피해자가 많다하여 책임이 쉽게 긍정되고,

눈에 보이는 피해자가 없다하여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적 책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평가로 귀착됩니다. 해커를 잡는다 하여 잘못한 자가 자신의 잘못을 덮을 수 없고, 해커를 못잡는다 하여 잘못한 것은 아닌 이가 잘못하게 되진 아니하는 것, 그것이 행위책임주의입니다.

스스로가 지금 평소 행하는 행위의 선택들에 의하여만 평가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만 실은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벌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말이니까요. 이는 정의의 이름입니다.

한편, 행위/과실책임주의의 결과, 개인들에게 귀속시킬 수 없는 피해는 불운으로 남게 됩니다. 이를 고스란히 실제적, 잠재적 피해자들이 감수하라고 하면? 그들의 저항으로 행위/과실책임주의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불운에 대처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 아닌 사회, 국가라는 제도의 문제 즉, 헌법과 입법의 문제가 되고, 우리들을  불운에서 보호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뽑은 의제된 우리들-대통령과 국회의원-이라는 말이 됩니다. 사회구성원이 불운을 다루는 지혜! 이 역시 정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의란 부르면 날아오는 지니가 아니라 곧 나와 우리들의 아바타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번 사고가 소송참여자만의 책임판명 관전 게임으로 축소되지 않고, 우리들과 미래세대를 위한 개인정보체계의 건설적인 대안수립과 그간의 개인정보 사용/제공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의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