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꺼비헌집

[050524] 오래된 미래-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배운다 (수정판)

아이템 현거래 이야기를 반지의 제왕에 빗대어 풀어본 짧은 수필입니다. 2003년 1월 군법무관 신분 마치기 직전 플포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었는데 오늘 조금 손질하여 올립니다.

달라진 것은 골룸과 보로미르편 내용이 완전히 자리 바꿈하였고, 결론부의 대안제시에 최근 변화양상을 추가했다는 점 정도입니다(03년 게임중독 대안제시 중 심즈식 피로도 시스템은 이후 WoW에서 미흡하게나마 유사 형태로 구현되었으나 별반 실질적 효용이 없다 여겨져 이번 판에서는 삭제함)

2003. 1. 15.판은 이곳 참조
http://community.playforum.net:8080/bbs/prog/column?action=read&iid=10011012&kid=1674


현거래를 치팅이라 오인하여 그 자체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적이었던 03년도에 비해 게임문화연구회에 들어온 현재는 보다 중립적으로 현거래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MMORPG의 현거래는 행동의 자유와 행위(선택)의 책임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성인간의 행동양식이어야 한다는 데는 큰 변함이 없습니다.



< 반지의 제왕 >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가 한국의 피시방 산업을 일으키고 그 결과 형성된 인터넷 기반이 오늘날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 발전에 결정적 발판 역할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뿌려 놓은 살육과 경쟁의 피에서 자라난 탓일까, 한국의 주류적 온라인 게임들은 아이템 현금거래, PK, 현피, 해킹과 같은 부정적인 무늬를 띠고 있으며 고려말 불가사리란 괴물같이 수년 째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과 정부기관의 질타를 먹을 수록 오히려 무늬가 선명해지고 덩치도 커지고 있어 게임내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판타지 온라인 게임을 낳게 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켰다. 반지의 제왕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네티즌 혹은 게이머들이 워크래프트나 리니지의 캐릭터들이 반지제왕에서 등장한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다중사용자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의 원조격인 울티마나 위저드리같은 1세대 롤플레잉게임이 바로 톨킨이 창조한 요정, 인간, 오크들의 중간계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98년이래 온라인 게임 문화의 흐름과 최근의 반지제왕 붐을 지켜보다보니 한국 온라인 게임의 문제점을 타개할 실마리를 그 사상적 원류인 『반지의 제왕』을 통해 찾아낼 수 있지 않나는데 이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한 파괴와 살육을 통한 폭력-황금 숭배의 스타크래프트적 잔상(절대반지)을 용기있게 버리고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현하자는 톨킨의 오래된 교훈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의 온라인게임은 톨킨의 세계를 빌어 모습만 바꿔 놓은 블리자드(디아블로)의 세상이 아니었던가….


< 절대반지의 제조자 사우론 >


아이템 현금거래는 절대반지다. 중세 판타지의 게임 속으로 침투한 현실 자본주의의 통로인 이 반지는 현거래 게이머에게 막강한 권력과 부를 쥐어 줄 수 있다. 반지의 마력은 지나치게 강해 한번 낀 자는 이를 현실의 어떤 보물보다 애지중지하고 해킹이나 PK로 인해 이를 잃게 되면 광분한다. 반지 소지자는 갑작스레 커진 자신의 힘에 놀라 어리둥절하다 종종 책임감, 동정심을 잃고 자기과시와 공격성, 탐욕에 휩싸이곤 한다.

다른 이보다 늘 뛰어날 것을 속삭이며 시간당 요금을 받아내는 중간계(게임 속 레벨시스템) 속에서 이 절대반지는 더더욱 게이머들의 욕망과 부러움을 확대 재생산한다. 온라인 게임에 이 반지를 도입한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현실에서 지친 이들에게 게임 속에서만큼은 절대 자유를 주고자 기획했노라 토로하지만, 그는 절대 자유가 얼마나 빨리 절대반지로 부패하는지 목격했을 뿐이다.

자유(플레이)를 파는 시장논리만 있고 자유(플레이)를 성숙시키는 공공논리는 부재한 게임환경 속에서 자유는 게임 밖의 악-사우론을 초대하고야만 것이다. 그렇다 사우론은 바로 중세 계급제라는 비민주적 시스템 설정의 허약한 부분을 뚫고 침입한 현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다름 아니다. "너 개인의 힘을 키워라 그리고 다른 이는 믿지 말고 그를 눌러라. 그렇지 않으면 눌리게 되리라…."


< 반지를 끼지않은 프로도 >


온라인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달리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가상사회다. 이 사회 속에서 프로도와 같이 게임의 순수성을 동경하는 절반의 게이머들과 아이템·레벨제의 대안을 추구하는 게임사들은 절대반지의 힘의 유혹에 다가섰다가도 용기있게 이를 거부하고자 애쓴다.

물론 이런 순수성이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절대반지의 나즈굴들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프로도와 같은 게이머들은 절대반지를 손가락이 아닌 목에 걸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 들은 게임 밖 현금으로 게임 속의 파워를 바꿔치기 하는 반지의 힘에 맞서려 한다.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낄 것이냐 단지 목에 걸 것이냐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골라야 했던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간의 선택과 같다. 게임 외적 자본의 논리로 게임 속 삶을 누리길 원한다면 그 자본의 힘으로 게임 속 판타지의 맛을 보길 원한다면 아이템의 반지를 사서 끼어라. 그 순간 한때 프로도와 같은 호비트 족이었던 지금의 불쌍한 골룸을 닮게될지라도.


< 언제나 목마른 골룸 >


아이템 현금거래라는 절대반지를 끼려하는 자들을 중개하는 중개상은 골룸의 뒤를 따르기 쉽다. 그들에게 게임은 황금의 투기장, 욕망의 주식시장이다. 이런 골룸 자신도 절대 반지가 주는 파워업과 어두운 포스의 운명을 잘 알기에 더욱 번민하고 초초해한다. 그는 반지의 영향권 내에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 할뿐, 이를 파괴할 마음은 전혀 갖고 있지 아니하다. 그렇기에 그는 끈질기게 프로도의 여정에 동행하고 협력하는 척하는 것이다.[SOE의 Station Exchange는 그점에서 한계가 노출된다]


한편, 프로도는 골룸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모르도르 산에 이르는 경로를 추적해나갈 수 있다. 프로도여, 골룸과 함께 반지를 파괴하는 원정대의 길에 올라라. 그리고 절대반지가 어떻게 하여 호비트였던 스미아골을 골룸으로 변하게 했는지를 추적하라. 레벨업 공장 속 아이템 기계의 설계구를 찾아라. 그 속에 반지를 던져 파괴하라. 죽은 골룸을 다시금 스미아골로 살려내리라.


< 반지를 맡겨 달라는 보로미르 >


프로도와 함께 원정을 떠난 이 가운데는 곤도르의 기사 보로미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도가 반지를 버리려는 것을 무모하다고 판단, 오히려 그 절대반지를 사용하여 사우론과 대적하려 했다가 최후를 맞는다.

아이템 현금거래의 관계에 있어 보로미르는 누구에 해당할까? 필자는 명분상으로는 게이머의 게임을 즐길 권리를 주장하고 대변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보유한 아이템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집중하고 연연해마지않는 일부 아이템 현거래 매수인들이 보로미르가 아닌가 싶다. 이들의 아이템 현금거래 양성화 주장은 보로미르가 프로도에게 반지를 자신에게 주면 사우론을 퇴치하고 곤도르 왕국을 지키겠노라고 회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보로미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강력한 파워의 절대반지의 기에 눌린, 그리하여 반지를 끼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간계의 공포, 게임에 접속하여 힘겹게 살아가기 위해 계속적 수만원의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하는 중간계의 무게에 눌린 그의 딸림을 이해하기에..소설 속에서 처럼 그의 끝은 영웅적이기를.



< 배반자 사루만 >


그는 게임 밖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충실히 게임 안으로 도입한 자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속칭 작업장을 운영하여 게이머들을 산악 트롤처럼 사슬에 매달아 성문 여닫이 시키듯 24시간 노동시키는 사람들, 절대반지의 포스에 저항할 게임 설계에 대한 고민 없이, 운영 약관으로 게이머들을 몰아 넣고 돈을 챙기는 사람들.



판타지(또 다른 세상에 대한 열정적 꿈)의 배반자 사루만. 게임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할 뿐인 그들의 검은 욕심이 언제쯤 하얀 망토 뒤에서 드러날 것인지.


< 운명의 산에 반지를 던져라 >


절대반지는 그것이 탄생한 모르도르 운명의 산 분화구 안에 던져야만 사라진다. 모르도르 산 분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격성과 탐욕을 자극하는 시스템, 이익과 시장법칙만을 우선시하고 게이머의 위엄과 존경을 경시하는 시스템, 초보자는 물론 고레벨 게이머도 소속감없이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 고레벨만 바라보고 다른 이보다 1레벨, 1시간이라도 더 앞서가게 만드는 입시전쟁식 시스템이다.

절대반지에 안주하지 않더라도 사우론과 사루만 두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세상, 같은 목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꿈들을 펼쳐가며 선의의 경쟁을 겨루는 세상을 위해 절대욕망의 반지는 모르도르의 분화구에 던져져야 한다. 이제 아이들의 놀이감이던 게임은 국민적 '문화산업'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그 성장 엔진이 게임사의 자체 능력보다는 게이머가 동참하여 이룩한 공동체성에 있는 만큼 그 내재적 '문화역량'이 숙성되어야만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샘의 격려 >


최근 프로도 곁에 샘이 다가오고 있다. 파티제와 게임 속 길드를 강화한 게임, 퀘스트의 성과를 아이템이 아닌 캐릭터의 능력치로 보상하는 게임, 핵 앤드 슬래쉬가 아닌 다채로운 퀘스트와 드라마적 요소를 많이 투입한 게임, 캐릭터의 삶에 불교의 윤회사상을 도입한 게임, 힘과 마법 외 다른 재능도 키울 수 있는 스킬제형 게임, 제작자의 권한을 일부 게이머들에게 양도한 게임 등 모두 'I am Sam.'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본질적으로는

(1) 현거래의 게임시스템적 기제라 할 게임 속 아이템 증여(gifting) 프로세스에 대한 리팩토링
     [Barry Kearns,http://vektor.blogs.com/vektorblog/2005/04/draft_of_nocash.html ]

(2) 양도허용, 양도불가, 양도제한 아이템 카테고리 선정(WoW의 귀속 시스템 참고?)

(3) 아이템을 비록한 콘텐츠 창출에 플레이어가 참여 내지 주도할 수 있는 자율적 정치경제체제  
     [Second Life의 atomistic construction, neolith님의 예쁜 빈칸?]

등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그 중(1),(2)는 시스템 코드에 의한 규제로서 청소년 이용가 MMOG에서, (3)은 자율적 규제로서 성인 이용가 MMOG에서 보다 그 활용도가 높으리라 보임} 다만 아이템 거래가 커뮤니티 형성에 갖는 긍정적 측면을 최대한 살리는 조율의 미덕이 위 고려에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관련하여 단판 혹은 엔딩 개념이 있는(달리 표현해 게이머의 플레이는 엔딩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초기화되는) 블리자드 게임에 매겨지는 요금 체계를 게이머들의 부가가치적 기여도가 부각되는 엔딩없는 MMORPG에도 그대로 적용, 초보나 고랩, 킬러나 리더를 불문하고 종량제에 따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현행 통신 요금 체계에 대한 개선책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반지의 제왕' 2편에서 나오는 샘의 격려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그건 그래요. 그리고 우리가 길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대해 좀더 알았더라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일이란 게 그렇게 마련입죠. 옛날 이야기나 노래 속에 나오는 용감한 행동들이 다 그렇잖아요, 주인님. 모험담이라는 것 말이에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훌륭한 이들이 찾아 나서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이 신나는 데 비해 삶이란 건 좀 따분한 편이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일종의 유희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그 얘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는 건 그런 게 아니겠죠. 그들은 대개들 그냥 그런 일에 뛰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발길을 돌길 기회가 많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또 그들이 그렇게 했더라도 우린 알지 못할 테고요. 왜냐하면 그랬다면 그들은 잊혀졌을 테니까요. 우리가 듣는 건 계속 전진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제목 '오래된 미래 -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배운다'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