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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040527] 리니지 사회에 나이(NAI)를 넣자 -상-

2002년도에 playforum.net에 실린 글로써 많은 부분 수정을 요하는 글입니다만, 당시 저의 생각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NAI 1 : 영등위와 엔씨가 놓쳐버린 것들에 관하여-


리니지는 또 하나의 사회다. 다중사용자 온라인접속 역할수행 게임(이하 온라인 게임)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명확한 책, 영화, 음악과는 속성이 다르고 심지어 같이 게임으로 분류되는 슈팅게임, 보드게임, 전략게임, 어드벤처게임, 단독 플레이 역할수행 게임과도 다른 특성을 지닌다.

온라인 게임회사는 앞서 든 다른 생산자(저작자)와 달리 다중 사용자의 참여 없이는 게임이 운영되지 못한다는 면에서 연출 및 무대 제공자에 가까우며, (이 점에서 '사전', '사후'심의라는 말은 부적절한 표현이라 본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심의는 '진행 중' 심의만이 가능할 뿐이다) 온라인 게이머들은 상당한 자유도를 구사하며 게임 내용을 완성시키고 개선시켜 나간다는 면에서 소비자집단이 아니라 공동연주자 집단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8명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 천명의 온라인접속 게이머들은 엔딩없는 게임 속에서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여 그들만의 역사를 쌓고, 층층 레벨구조의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체가 만들어낸다. 그렇다.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 내부는 하나의 인위적인 사회인 것이다(현 사회구조의 문제점은 후술).


따라서 게임사의 표현의 자유(저작권) 그리고 게이머의 사용권(계약상 권리, 소비자)으로 양분하여 영화나 책에서 그러했듯이 전자의 측면에만 정부 규제가 행해지고 게임사가 수정을 가하는 것은 온라인 게임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능동적 참여자인 게이머를 제3자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에 이르게 한다(금번 리니지 업데이트안에서도 게이머는 소외돼 있다). 리니지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리니지를 법정책적으로도 단순 저작물이 아닌 또 하나의 사회로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리니지 업데이트는 미봉책일 뿐 PK와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는 게임사가 프로그램 코드(게임 시스템)상 그런 행위를 허용했기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영등위의 지적대로 코드적으로 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리니지 업데이트 안에서도 PK를 하더라도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도록 코드를 바꾸겠다고 천명한 것이리라. 불가능을 요구한 것은 아니므로….

하지만 리얼리티면이나 원래 기획한 게임 프로그래머의 표현의 자유측면에서 '다른 캐릭터를 죽일 수 있게 하고, 죽게되면 그가 갖고 있던 무기가 땅에 떨어져서 남이 이를 가져 갈 수 있게 한 것' 자체를 문제삼아 이를 못하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해법이다. 같은 논리라면 아예 이참에 아이템 교환 시스템도 게임에서 삭제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속이 안 좋아 자꾸 토하는 사람이 있다 치자. 그들이 의사에게 달려가 구토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식도에 음식물 역류방지장치를 삽입해달라고 요구하고 그 의사는 이를 들어주고…. 이렇게 된 것은 영등위나 게임사 모두 온라인 게임을 단순 저작물로 보고 그 표현을 제거(마치 영화에서 특정 장면만 오려내듯)하는 데만 주력했을 뿐 게임 사회의 구조적 병인을 고치는 건 도외시한 데서 기인한다 본다. 이 때문에 필자는 엔씨의 발표를 마냥 환영할 수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온라인 게임은 가상'사회'이므로.


PK와 아이템 현금거래의 게임 내적 원인을 찾아서 필자는 PK시 아이템 드롭을 허용하는 코드 때문에 게임 사회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 아니라 거꾸로 게임 사회 내에 무언가 문제가 있기에 그것이 아이템 드롭을 허용하는 코드라는 목구멍으로 구토해져 나온 것이라는 측면에서 다가가려 한다.


물론 게임문화, 게이머의 실제 연령 및 직업, 권력을 숭상하는 풍조, 대리만족을 찾기위한 심리적 욕구 등과 같은 게임 외부 사회의 영향도 무시 못할 변수이지만 (게임 내부 사회와 게임 외부 사회는 딱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것이므로) 필자는 일차적으로 게임 내부 사회에 주된 원인이 있으리라 진단했다. 물론 게임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은 필자만의 독창적인 진단이 아니라 게임평론가 및 게이머 스스로에 의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논의 선상에 오른 것들이다.


리니지의 경우 대표적인 것이 아이템 위주의 경제 시스템(고급 아이템의 희소성, 레벨과 상관없이 아이템 획득시 이를 사용 가능, 아이템별 차이 확연 등)과 게임 내 성을 두고 대규모 플레이어간에 다투는 공성전 시스템(아이템 위주 시스템 하에서 결국 동등 조건시 아이템이 우수한 쪽이 승리할 확률이 높으며, 동시에 공성전은 엄청난 고급 아이템 소비를 가져와 아이템 수요를 올림)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 전반에 있어 게임의 중독성을 가져온다는 원죄적 현상으로는 게임 내 엔딩이 없어 저장하였다가 다시 불러오는 식으로 연속적으로 플레이를 하며, 그 결과 자신의 경험치가 일정 레벨의 개념으로 누적되고 이것이 신분상승의 척도로 통용되는 시스템을 든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게임에 접속 시간을 늘리는 것은(오랜 시간 접속=높은 경험치, 아이템 획득=레벨상승) 게이머에게 현명한 선택으로, 게임 접속 시간을 줄이는 것은 (그 시간에 접속한 다른 게이머가 성장함에 상대적으로 자신은 뒤쳐지게 보이므로) 나쁜 선택처럼 보인다.


현금거래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부작용 위에서 살펴본 요소가 결합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이머간 접속시간을 위한 과다경쟁이 생긴다. 오랜 시간을 투하해 게임 내 획득한 아이템과 캐릭터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갖게 된다. 이 현상은 특히 리니지와 같이 어떤 아이템을 갖느냐에 따라 능력이 확연히 차이나는 경우에서는 더욱 증폭된다.


현실적 여건으로 접속시간 확보에서 탈락된 게이머들은 장시간 접속한 게이머를 따라가기 힘들고 주위 친구들로부터 저레벨이라고 무시당하거나 가끔씩 PK당하기도 한다. 더구나 게임 내 고급 아이템을 주는 몹(사냥감 내지 몬스터들)은 그 숫자도 드문데다 역시 고레벨 게이머들이 독점하기 쉽다. 일부 게이머는 이런 시간적, 신분적 갭을 메꾸어 줄 수단을 간절히 찾게 된다.


한편, 많은 시간을 통해 (유명한 혈맹의) 군주 또는 최고레벨 수준에 달한 게이머가 레벨 구조상 일정 수 피라밋 구조의 상층부에 존재한다. 그 중 일부는 성실하게 아래 레벨의 플레이어를 지도하고 공성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집중하지만, 일부는 더 이상 게임 사회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흥미를 잃거나 또는 (유한 자원인 시간을 현실 사회가 아닌 게임 사회에 쏟아 부은 결과) 게임 밖 현실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자아를 자각함으로 인하여 게임을 떠나려 한다. 이들에게도 역시 가장 아까운 것은 시간(그리고 물리적으로 연결된 피시방, 전용선 이용료)이기에 이를 보상받길 원하는 자가 생긴다.


이리하여 캐릭터 내지 아이템에 대한 수요와 공급곡선이 형성된다. 그러나 게임 속 정치 및 경제 구조상 고급 아이템을 가진 고레벨 게이머는 희소하고 그 중에서 거래에 임하고자 하는 공급의 양은 한정되게 되므로 가격은 상당히 높게 형성된다. 그 결과 이 마저도 가난한 또는 돈을 주고 사길 아까워하는 게이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다.


그 중의 솜씨있는 일부는 전자적 폭력(해킹) 혹은 물리적 폭력(현피)을 통해 신분상승과 시간보상을 꾀하며, 반대로 아이템과 캐릭터가 시장가치를 지닌 상품이 된다는 것을 인식한 일부 게이머는 이를 확보하기 위해 PK를 통한 아이템 강취, 채팅 사기를 통한 아이템 편취를 시도한다. 이 와중에서 PK는 또 다른 PK를 부른다.


대안으로서 권선징악적 시스템과 그 한계 PK가 게임 내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게임 밖 사회로까지 일파만파 물의를 일으키자 PK를 범한 게임 내 범법자인 카오에 대해 게임사들은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게임사회 내 병 치료를 위하여 게임사가 제조한 내복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조치로 카오로 지정된 캐릭터는 아이디가 빨갛게 변하고 카오를 다른 선한 캐릭들이 죽여도 정당한 행위가 되게 하는 방안, 그렇게 카오가 PK를 당할 경우 카오가 떨어뜨리는 아이템 비율을 평균치 이상으로 코드상 설정하여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는 방안, 카오가 마을 내로 진입시 경비병들이 이를 체포하여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이 채택된 것으로 안다. 이 외에 카오가 다른 카오를 PK할 경우 카오로부터 사면케 해주는 방안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권선징악적 방안은 개별적, 정적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을 듯하나 카오란 어느 정도 이미 힘의 권력구조 내에서 파워를 가진 기득권층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고, 카오가 집단적 차원에서 여기저기서 일어날 경우 그 대처가 곤란하며 오히려 카오끼리 면죄부를 받아내기도 쉬워진다. 또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환원하여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의도적으로 카오가 되어 아이템을 확보한 경우 사후적인 제재이전에 아이템 현금거래를 통해 이익을 달성하게 되면 그 후 카오 캐릭터는 미련 없이 버리고 다시 다른 캐릭터을 선한 양의 탈 삼아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현실적으로 아이디 실명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익명으로 플레이가 가능함에 기인) 등에 비추어 볼 때 집합적이고 동적으로 볼 때 그 효과가 약하기 쉽다 하겠고 실제로도 그러한 것 같다.


1부를 마치며 살펴본 바와 같이 권선징악이란 게임 내 사회구조의 변화로는 구토의 원인을 제대로 치유하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그 결과 영등위는 게임사회가 아닌 표현양식 자체에 메스를 가한 것 같다. 하지만 메스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권선징악이란 내복약은 비록 약효가 적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다 할 것이다. 게임 내 사회병 치료를 위한 근원적 해법으로서 외과 수술은 신중해야 한다. 게임사회의 자생력을 헤치고 발전을 저해하는 더 큰 부작용을 낳기 쉽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필자가 끓여낸 나이(NAI System)라는 내복약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필자의 약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풍부한 발전적인 해법이 게임을 사랑하는 네티즌 중에서 나오길 기대하면서….